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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생법회는 바로 생명해방 법회입니다.

작성자
admin
작성일
2021-06-19 14:08
조회
3
생명이라 하는 것을 쉽게 생각하면 우리 마음이 생명이 아닌가?
분명히 우리 마음이 생명입니다. 그러나 중생이 생각하듯이 우리 마음만 생명인 것은 아닙니다.
다른 동물도 똑같이 생명입니다. 또한 식물도 똑같은 생명입니다.
그러나 성자의 밝은 지혜로 볼 때는 사실 그런 상이 허망한 것입니다.
그런 상은 본래로 있지도 않은 것입니다. 그런 것을 우리 중생이 번뇌에 가리어서 없는 것을 있다고 봅니다. 색즉공이라 하는 우리 불교의 하나의 대강령(大綱領), 부처님 지혜는 그냥 그렁저렁한 현상 지헤가 아니라 실상지혜((實相智慧)라, 실상 지혜는 바로 반야지혜((般若智慧)입니다.
우리 중생은 반야지혜로 보지 못하고서 상대 유한적인 인간의 업장으로 봅니다. 따라서 그런 업장이 있다고 생각할 때는 우리 생명은 그 업장에 구속되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생명해방((生命解放)) 생명 존중의 법회인 것입니다.
우리 생명은 성자 아닌 분들은 모두가 다 지금 구속되어 있습니다. 새장에 갇힌 새와 같이 우리에 갇힌 그런 짐승같이 우리 중생들은 지금 갇혀 있습니다.
갇혀 있는 그 사실마저 모르는 것이 우리 중생입니다.
탐욕심의 노예가 되고 분노하는 그 마음의 노예가 되고 본래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는 미운 것도 없고 또는 사랑할 것도 없는 것인데 우리 중생들이 바로 못 보고서 좋다, 아니다, 시비(是非)분별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생명은 그러면 어떻게 생겼는가? 이 생명은 어떻게 생긴 것이 아닙니다.
생명 자체는 우리 인간의 몸속의 신장이나 또는 뇌 속에만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 몸 전체에 생명이 가득 넘쳐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중생들은 그러한 본생명의 실상, 본 모습을 모르기 때문에, 본 성질을 모르기 때문에 내 생명 다르고 네 생명 다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런데서 우리가 업(業)을 짓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그러기에 무아(無我)라, 내가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 불자님들이 내가 없다는 소식을 모르면 부처님의 반야 지혜를 모르시는 것입니다.
내 모양이 이렇게 엄연히 존재하는 소중한 내 몸뚱이가 이와 같이 존재하는데 왜 나보고 없다고 하는 것인가?
인연 따라서 잠시간 거품 같은 모양을 낸 것입니다.
그림자가 있지가 않듯이 잠시간 그림자같이 모양을 낸 것이 이 몸뚱이입니다. 따라서 생명을 해방시킨다는 것은 우선은 인간존재, 인연 따라서 이루어진 나라고 우리가 고집하는 인간존재의 그러한 구속을 해방시켜야 합니다.
'나'라는 것이 인연 따라서 이와 같이 모양이 된 것인데 우리 중생들이 근본 생명의 성품을 보지 못하니까 이 모양 이것이 내 것이다 이런단 말입니다.
그러나 다행히 과거 전생에 다섯가지 계행정도는 지켜서 우리 인간으로 태어났습니다. 의식활동을 하는 우리 인간은 스스로 판단할 줄 알고, 반성을 할 줄 압니다.
따라서 우리 인간이나 인간 이상의 천상이 그런 생명의 존재만이 생명을 해방시킬 수가 있습니다.